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안상홍님/어머니하나님/하나님의 교회/
아브라함의 자손’, 2천 년 전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훈장과도 같은 칭호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하나님께 축복과 구원을 약속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아브라함의 혈통을 계승한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께서 그들의 혈통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39~40)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길 자처했지만 정작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다’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이런 믿음의 행위가 아브라함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창 18:1~5)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곧바로 장막문까지 달려나갔다. 그리고 몸을 땅에 굽혀 예를 표하고 정성껏 물과 음식을 대접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인 믿음의 모습이었다. 어떠한가. 유대인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던 아브라함과 성경의 예언대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대인.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지 않는 자는 그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유대인은 결코 구원이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성경은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다고 예언하고 있다(패스티브닷컴 ‘하나님께서 왜 사람으로 오셨을까’, ‘남성과 여성의 존재 이유’). 그러나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일부 기성교회는 이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성령과 신부의 이름을 모욕하며 배척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성경 예언에 따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다. 그런 자만이 성경의 약속대로 천국 유업을 이을 수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아브라함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극진히 영접햇듯 우리도 육신으로 오신 성령과 신부되시는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말씀이 육신되어/안상홍님/어머니하나님/하나님의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하며 훼방하는 것은 누구에 대한 거부요 반항이며 배척입니까? 안식일, 유월절, 침례, 새이름, 성령과 신부를 거역하고 배척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에 대한 망령된 행실이며 반항입니까? 이러한 악행과 사고방식은 전류가 흐르고 있는 고압선을 마치 고물상의 구리선으로 보고 함부로 다루다가 변을 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2천 년 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감당하시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근본 누구셨습니까? 당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마지막 성령시대에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오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제발 성경을 잘 살펴보시고 말씀을 믿으시고 말씀을 거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니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목적이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이라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고 하면서 어찌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실 수 없다고 생각할까요? 수 천년의 대를이어 하나님을 믿어오던 유대인들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2천년전의 과오를 오늘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걸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두번째 오시겠다는 약속대로 안상홍님과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성령과신부/어머니하나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였던 유한준(1732~1811) 선생이 남긴 글이다. 최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에 인용하면서 세인들의 마음에 명언으로 새겨졌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가령 꽃을 사랑하면 꽃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기성교인들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아무리 성경을 열 번, 백번 통독하며 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성경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장 6절)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성경의 예언을 볼 수 있으며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유한준 선생의 글처럼 사랑하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자.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누군지 말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장 12절)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믿게 되나니, 그때 믿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것이 아니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이 시대 구원자 성령과 신부이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상홍님/하나님의 교회/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With Us)’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장차 사람으로 탄생하실 예수님을 두고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하여 ‘임마누엘’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모습으로 함께 계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18~23)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결국 ‘임마누엘’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전 세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시인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독교의 근본 교리도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해 못할 일이 벌어졌다. 2000년 전 임마누엘로 임하신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렸던 유대인들처럼 오늘날 구원 주기 위해 다시 오신 재림 그리스도(히 9:28)를 믿지 못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을 누구보다 굳게 믿고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목사들이 앞장서서 배척하고 있다. 이상한 점은 그들이 설교 단상에서 임마누엘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임마누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대꾸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성경의 예언에 따라 임마누엘로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를 이단 취급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은 임마누엘의 뜻을 모르는 게 확실하다. 만약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재림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뜻이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하나님의 교회/
성령 하나님 안상홍님께서 성부.성자.성령, 세 시대 중 마지막 성령시대의 구원자로 등장하십니다.
요 14 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각각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으로 역사하신 것처럼 성령 하나님도 여호와나 예수의 이름이 아닌 새 이름으로 오셔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계 3장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우리는 성령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성자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새 언약 진리를 회복하시고 알려주시는 분이 있다면 어떤 모습과 이름으로 오셨든 그 분이 바로 홍해를 가르신 권능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 곧 이 시대에 등장하신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자신들의 교리대로 해석한다면 결코 참 하나님을 깨달을 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역사하셨을지라도 근본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믿음을 갖고 이 시대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등장하시는 구원자를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2012년 8월 7일 화요일
우리 영혼의 게이트웨이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하나님의 교회/
‘서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하다 이런 메시지가 뜨면 당황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서버를 찾지 못하는 경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통신망이 가장 큰 이유다. 인터넷은 통신망과 접속하기 위해 각자의 게이트웨이(gateway)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인터넷의 출입구다. 이 게이트웨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위와 같은 메시지가 뜨게 된다.
이처럼 서버를 찾지 못하는 경우는 우리 영혼에게도 발생한다. 그것은 영적인 게이트웨이를 올바로 찾지 못해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영혼의 게이트웨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예수님)가 문(gate)이니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장 7~10절)
인자(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장 53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장 26~28절)
우리의 영적인 게이트웨이는 유월절로 생명 주시는 재림 예수님이시다. 만약 당신이 찾은 영적 게이트웨이에 유월절이 없다면, 또한 재림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 게이트웨이로는 절대 천국에 접근할 수 없다. 아무리 접근을 시도해도 당신은 결국 ‘서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말 것이다.
[출처 : http://pasteve.com/335662]
2012년 7월 5일 목요일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신 구원자 안상홍님
<성경 사용설명서 - 짝과 짝이 있는 성경>
성경에는 하나도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씀을 짝과 짝으로 연결해놓으셨다. 따라서 올바르게 성경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짝된 성경 구절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무나 성경의 짝을 올바르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벧후 3:16)”고 했다. 따라서 억지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셨다.
사 29:12~14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을 가리켜 무식한 자라고 칭하셨다. 사람의 계명이란 무엇일까?
열방의 규례요, 헛된 것이라고 했던 ‘십자가’와 태양신 숭배를 위해 마련된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가 아니겠는가.이런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자라고 하셨다. 이런 자들은 무식하여 하나님의 짝된 말씀을 찾을 수 없으니 당연히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수 없다.(그래서 예배시간에 목사들이 꼴랑 성경 구절하나만 보고 사담만 잔뜩 늘어놓는가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짝된 말씀을 찾아보는 이들을 가리켜 ‘짜깁기’, ‘억지 해석’이라며 조롱한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무식하니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 보는 방법을 그리 결정하셨는걸 어찌하겠는가. 무식한 것이 잘못이지….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한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누구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는가? 바로 그 책은 쓴 저자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책이니 하나님께 물어보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다행히 성경의 모든비밀을 알려주시기위해 초림예수님 이후 이 시대 재림예수님께서 두번째 육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분이 바로 재림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이시다. 안상홍님은 안식일과 유월절, 무교절 등 3차 7개 절기를 회복해주시며 성경의 모든 짝을 찾아주신 이 시대 구원자시다.
부디 억지로 성경을 풀다 멸망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불쌍한 영혼이 없기를 바란다.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의 이름으로,,,/하나님의 교회/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십니까?
성령시대에 사는, 당신은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 하나님이신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어떻게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느냐고 당신은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오직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시겠죠. 과연 1900년 전, 성자시대에도 당신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을까요? 미안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단으로 몰릴 겁니다.
성자시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했을까요?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시 116:4)’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성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당시 성경은 구약성경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호와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이 잘못한 것일까요.
왜 사도들은 여호와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을까요? 그 이유는 성자시대 구원자는 여호와가 아니라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즉 성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성부시대가 아니라,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성자시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예수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예수님)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돌아가거든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자시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도들을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상한 단체라며 핍박했습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아직도 당신은 성자시대 구원자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니까?
성경 증거대로 이 시대 구원자인 성령 안상홍님께서 오셨는데도 말입니다. 성자시대에 성자의 이름으로 기도해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성령시대인 오늘날에는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성령으로 오신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육체로오신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시대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간혹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진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린다며 매년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니 말이다.
기독교 자체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중심사상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주로 영으로 존재하시면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구원을 베푸셨다. 그러나 2천 년 전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제든 영으로든 육으로든 계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고 말하면서도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부인한다. 이런 자들은 실상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도 바울은 분명 예수님을 ‘사람이신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육체로 오셨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도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친히 말씀하셨다.
요 10:30~3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려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며 돌로 예수님을 치려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신흥종교의 교주 정도로밖에 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 자처했던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하나님의 교회는 육체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이 시대 마지막 구원자로 믿는다.
신성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구원코자 구더기 인생(욥 25:6)의 모습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육체로 오신 것이다. 이 감사한 마음을, 죄송스런 마음을 사도 바울은 알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육체로 오신 하나님,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알지 못한다. 마치 1900년 전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재림예수님은 이미 오셨습니다/성령시대구원자 안상홍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 땅에 재림하셨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언따라 이 땅에 오신 아버지 안상홍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장 32~33절)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보면 예수께서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의 때이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성경의 해답은 성경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복음 11장 13~21절)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실물 비유다.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신 것일까?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누가복음 13장 6~7절)
삼 년동안 복음의 실과를 구한 분은 예수님이다. 그리고 열매를 구하신 곳은 이스라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태복음 15장 24절)
이방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이방과의 막힌 담을 허신 이후부터다(에베소서 2장 11절). 예수님께서는 3년동안 복음의 열매를 구한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셨다. 구약에서부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했다(예레미야24장 1절).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셨던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이나 복음의 열매를 구하였으나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은 예언대로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처참한 멸망을 당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가 소생할 때, 즉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때가 도래할 것도 예언하셨다. 이는 멸망당한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소생한다는 예언이다. 예언대로 주후 70년 멸망당하여 1900년 동안 이방에 뿔뿔이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1948년 다시 나라를 회복하는 역사적 기적이 일어났다.
유사이래 1900년 동안이나 잃었던 나라를 회복한 나라는 이스라엘 외에는 없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힘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1948년 이루어진 이스라엘 독립은 재림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 계시록 3장 20절)
이스라엘 독립은 이루어졌다. 말라 죽었던 무화과나무가 잎을 내고 가지가 연하여졌다. 지금은 이미 인자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시대다. 그 구원의 음성을 발하는 시대다. 다시 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하는 시대다. 오셨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찾아야 하는 시대다. 재림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음성을 배척한다면 심판주가 오실 때 진노와 형벌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무화과나무의 예언을 이루시고 구원의 언약을 회복하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믿는다.
2012년 6월 22일 금요일
성경의 예언따라 이땅오신 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
“성경 어디에 예수님의 새 이름이 안상홍이라고 적혀있느냐”며 따지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성경에 ‘안상홍’이란 이름이 있으면 제시하라고 생떼를 쓴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외치는 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묻겠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이 있다면 제시해봐라.”
2천 년 전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성경은 오직 여호와만이 구원자라고 기록된 구약 성경뿐이었다.
신약 성경은 이후 쓰여진 것이다. 구약 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로 예언되어 있는가?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구약 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없었어도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예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재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안상홍님께서 모두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영생의 진리 새 언약 유월절이 대표적인 증거다.
“성경 어디에 예수님의 새 이름이 안상홍이라고 적혀있느냐”며 따지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성경에 ‘안상홍’이란 이름이 있으면 제시하라고 생떼를 쓴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외치는 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묻겠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라는 이름이 있다면 제시해봐라.”
2천 년 전 이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성경은 오직 여호와만이 구원자라고 기록된 구약 성경뿐이었다.
신약 성경은 이후 쓰여진 것이다. 구약 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로 예언되어 있는가?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구약 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없었어도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예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재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안상홍님께서 모두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영생의 진리 새 언약 유월절이 대표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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